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명절에 감정이 터졌을 때

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명절에 감정이 터졌을 때 상담사례

상담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간 지 몇 해가 지난 사람이명절이 끝난 뒤 까닭 없는 눈물이 쏟아지면서, 그것이 지금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이런 분이 찾아왔습니다

몇 해 전 처음 오셨을 때, 이분은 의자에 앉자마자 등이 굳었습니다. 어깨가 올라가 있었고,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지만 손가락 끝이 하얗게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또렷했습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는데, 말이 끝날 때마다 숨을 참는 것처럼 멈추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몸은 한 번도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꺼낸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버스를 못 타요. 지하철도요. 십이년 년째요.”

사람이 많은 곳에 들어가면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지고,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택시를 탔고, 택시도 안 될 때는 가지 않았습니다. 직장도, 모임도, 가족 행사도 그렇게 좁아졌습니다.

이분이 놓인 자리는 두 가지였습니다. 몸이 거부하는 것과, 그것 때문에 세상이 좁아진 것.

내담자 보호를 위해 성별·나이대·구체적 상황을 변경했습니다. 상담 구조와 변화 과정은 실제 상담을 따랐습니다.

안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

겉에서 보면 대중교통을 못 타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분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이십 년 동안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안에서는 다른 것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오래전부터 참는 것이 습관인 사람이었습니다. 무시당해도 넘어가고, 부당해도 말하지 않고, 서러워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너무 오래되어서, 본인도 자기가 참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몸이 대중교통을 거부한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신호가 몸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버스가 아니라, 이십 년 동안 쌓이고도 한 번도 이름이 붙지 않은 감정이었습니다.

상담에서 이렇게 다뤘습니다

천은주 박사는 대중교통을 타는 연습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거부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고, 이유를 먼저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섯 회기 동안 이분의 몸이 언제부터 이렇게 반응했는지,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따라갔습니다. 최면 안에서 올라온 것은 대중교통과 관련 없는 장면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장면, 감정만 있고 말은 없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다섯 회기가 끝났을 때 이분은 전철을 탔습니다. 석 달 뒤에는 혼자 타고 다녔습니다. 여섯 달 동안 꾸준히 상담을 이어갔고,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났습니다. 이분은 가끔 연락을 하고, 센터에서 여는 강의를 꾸준히 들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괜찮았습니다.

명절 전부터 예감은 있었습니다. 뭔가 기분이 안 좋았고, 뭔가 하나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뭔지를 몰랐습니다.

명절에 가족을 만났습니다. 겉으로는 지나갔습니다. 문제는 집에 돌아온 뒤였습니다. 혼자 있는데 갑자기 올라왔습니다. 정화 작업을 하려고 앉았는데 펑 터졌습니다. 꺼이꺼이 울음이 나왔습니다. 멈추려 해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서글픈 건지 설움인지 분노인지, 감정에 이름이 붙지 않았습니다. 그냥 쏟아졌습니다. 한참을 울고 나서도 또 올라왔습니다. 본인 말로는 이랬습니다. “미친 듯이 했어요. 혼났어요.”

그제야 보인 것이 있었습니다. 무시. 차별. 부당한데 말하지 못한 것. 가족 사이에서 오랫동안 반복됐지만 너무 작아서 한 번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것들이, 명절이라는 자극 앞에서 한꺼번에 올라온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미세한 트라우마입니다. 소소한 트라우마는 알듯 말듯하면서도 본인이 압니다. 그런데 미세한 것은 아예 모릅니다. 너무 작아서 “설마 이것 때문에?”라고 생각하면 다룰 수가 없습니다.

다음 네 가지 달라진 것

● 십이 년 동안 타지 못했던 대중교통을 다시 탔습니다.
→ 다섯 회기 만에 전철에 올랐고, 석 달 뒤에는 혼자 타고 다녔습니다. 몸이 거부하던 것이 풀리자 세상이 다시 넓어졌습니다.
●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뭔지 몰랐는데, 이름이 붙었습니다.
→ 무시, 차별, 말하지 못한 것. 감정에 이름이 생기면서 뭉쳐 있던 것이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 눈물을 참지 않고 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전에는 우는 것 자체를 허락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울고 나면 시원하다는 것을 압니다.
● 회복 뒤에도 더 깊은 층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뒤에 다시 올라오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다음 단계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렇습니다

이분은 지금도 정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명절에 터진 뒤로 매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올라오는 감정을 하나씩 꺼내 보고, 다독이고, 내려놓는 중입니다.

전철을 타지 못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몸이 거부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무시당하는 느낌이 올 때, 서러움이 올 때, 여전히 바로 말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 반응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그 반응이 올라왔을 때 자기가 알아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뭔지도 모른 채 몸이 먼저 막았습니다. 지금은 “이게 올라오고 있구나”를 압니다.

이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대차게 뭐가 나왔구나, 했어요.”

그 말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익숙함이 있었습니다. 올라오는 것을 맞이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례가 말해주는 것

이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비슷한 자리에 있는 분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뒤에 감정이 다시 올라오는 것은 후퇴가 아닙니다. 첫 번째 회복에서 다루지 못한 더 깊은 층이 준비가 되었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몸이 버틸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진 뒤에야 꺼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큰 사건만 트라우마가 아닙니다. 무시당한 것, 차별받은 것, 부당한데 말하지 못한 것처럼 너무 작아서 트라우마로 인식되지 못한 것들이 오히려 더 오래 남습니다. 이름이 붙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복은 증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올라오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맞이할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상담의 결과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 글은 같은 변화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몸의 증상이 있으시다면 의료기관 진료가 먼저입니다.

더 깊은 회복이 필요하다면

천은주박사 최면심리센터에서는 괜찮아진 뒤에 다시 올라오는 감정의 뿌리를 찾아 그 자리에서 다룹니다. 지금 상황이 최면으로 다뤄질 수 있는지부터 면담에서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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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주 박사
작성자
천은주 박사

상담심리치료학 박사(칼빈대학원) · 최면심리상담 임상 17년

  • 천은주박사 최면심리센터 원장
  • 한국법최면분석협회 수석부회장
  • 국민대·칼빈대·호원대 심리학 강의 역임
  • 저서 『나를 힘들게 하는건 내가 아니였다』(위즈덤코드)
  • 공저 『4차 산업혁명의 돈의 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