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적 없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둘 수 없다고 느끼며, 몸도 형편도 무너져가던 사람이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고 다른 일로 옮겨가기까지
이런 분이 찾아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눈빛에 의심이 가득했습니다. 여기서 무엇이 될 수 있겠느냐는 눈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말을 시작하는데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긴장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오는 떨림이었습니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은 사람의 앉음새였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이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돈도 되지 않고, 정해진 일정을 지키는 것도 버겁다고 했습니다. 최면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만두고 싶다고 했습니다.
말은 떨렸지만 표정에는 결연함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놓인 자리는 세 가지였습니다. 몸이 아프고, 돈이 없고, 그런데 자유롭고 싶다는 것.
내담자 보호를 위해 성별·나이대·구체적 상황을 변경했습니다. 심리 구조와 변화 과정은 실제 상담을 따랐습니다.
안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
이분이 하는 말은 명확했습니다. 그만두고 싶다. 그런데 그 말 뒤에 곧바로 따라붙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만두면 안 된다는 감각이었습니다.
그만두고 싶다와 그만두면 안 된다가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면, 사람은 결정을 못 합니다. 하나를 고르는 순간 다른 하나가 벌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가 길어지면 몸이 먼저 무너집니다. 결정하지 못한 채 버티는 데 힘이 다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분이 이 일을 스스로 골라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시작을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느끼면, 끝내는 것도 자기 권한이 아니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만두는 일이 단순한 직업 변경이 아니라 허락 없이 하는 일처럼 무거워집니다.
상담에서 이렇게 다뤘습니다
천은주 박사는 그만둘 방법을 먼저 찾지 않았습니다. 시작된 자리를 먼저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끝을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시작을 자기 것으로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그 시기로 퇴행해 들어갔습니다. 무엇이 있었는지, 그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기가 무엇을 느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없애는 작업이 아니라 마주 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목소리가 달라졌습니다. 평소 이분의 목소리가 아니라 훨씬 굵은 목소리였고, 내용은 질책이었습니다. 왜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느냐는 말이었습니다.
이 목소리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이 글에서 판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상담에서 다룬 방식은 분명했습니다. 그 목소리를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말이 누구의 말인지, 그리고 이 말을 따를지 말지를 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구분해나갔습니다.
이분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만두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만두는 것을 자기가 정해도 된다는 자리였습니다.
다룬 것과 달라진 것
지금은 이렇습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의 일을 도우며 지냅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본인이 고른 일입니다.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처음 왔을 때 아픈 곳이 많던 사람의 앉음새가 지금은 없습니다.
형편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기준입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나니 지금의 벌이로도 삶이 유지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돈이 없다고 말했던 사람이, 지금은 그 돈으로 살아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얼마 전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거칠 것 없이 사는 것이라고. 처음 앉았을 때 세 가지를 말했는데, 몸이 아프고 돈이 없고 자유롭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분이 말하는 것은 세 번째입니다.
신앙 생활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믿음의 유무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해야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합니다.
이 사례가 말해주는 것
그만두지 못하는 일을 의지의 문제로 보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시작을 자기 것으로 갖고 있지 않으면, 끝내는 것도 자기 권한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1.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대개 그만두면 안 된다는 감각이 함께 있습니다.
2. 끝을 결정하려면 시작이 어디였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3. 회복은 상황이 전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감당할 기준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사례는 특정 종교나 신앙을 평가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상담에서 다룬 것은 신앙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내담자 본인이 자기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지였습니다.
상담의 결과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 글은 같은 변화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몸의 증상이 있으시다면 의료기관 진료가 먼저입니다.
더 깊은 회복이 필요하다면
천은주 박사 최면심리센터에서는 결정이 막히는 자리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를 함께 확인합니다. 지금 상황이 최면으로 다뤄질 수 있는지부터 면담에서 살펴봅니다.
면담 안내로 내 상태 확인하기지금 상황이 상담으로 다뤄질 수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면담 안내에서 먼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